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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후의 영화 해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타이타닉>, <돈룩업>, <인셉션>의 그 배우 (1)

by avocado_cream 2022.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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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에 <돈룩업>을 보고 오랜만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아 반가웠다. '차세대 디카프리오'라고 불리는 티모시 샬라메의 출연, 그리고 <헝거게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탔던 제니퍼 로렌스의 복귀작인 영화였기에 꽤 기대했고, 재밌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타이타닉>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3시간짜리 영화였지만 마치 5분동안 본 것 처럼 재밌었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잘생긴 남자 배우는 누구야?'라고 검색했을 때 나왔던 그 이름,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997년도에 개봉한 영화지만 다행히 극장 재개봉으로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디카프리오에 빠진 나는 그가 나온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길버트 그레이프>부터 시작해서 <인셉션>,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 당시 학생이었던 내 나이에서 무겁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영화는 다 본 것 같다. 

 

오늘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서 파헤쳐 보겠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니만큼 사심과 팬심을 가득 담은 포스팅이 될 것 같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할리우드 레전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타이타닉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

프로필 알아보기

 

  • 본명: 레오나르도 빌헬름 디카프리오 (Leonardo Wilhelm DiCaprio)
  • 닉네임: 레오 또는 레니 디 (Leo or Lenny D)
  • 키: 183cm
  • 생일: 1974년 11월 11일
  • 고향: 미국 캘리포니아 LA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즈시절, 하면 그 빛나는 꽃미남 스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항상 배우로서의 연기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은 배우이다. 그는 잘생긴 금발 하이틴 스타로 가는 길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는 커리어를 선택했고, 그 결과 외모와 연기력 모두를 가진 레전드 할리우드 배우가 되었다.

 

이름의 유래

 

그의 이름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된 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르네상스 미술의 전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뱃 속의 아기 레오가 어머니를 발로 찼다고. 태동을 느낀 어머니는 그 때 아들의 이름을 화가의 이름을 따서 '레오나르도'로 지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레오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와 독일 혈통을 갖고 있었다. 레오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10번 정도 독일에 아들을 데려갔었다. 

 

레오의 미들 네임은 '빌헬름'인데, Wilhelm을 독일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레오는 이 발음을 고수해왔다. 그리고 그가 데뷔 초반 소속사를 찾아다닐 때, 회사에서는 그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꿔야 유명해질 수 있다며 '레니 윌리엄스'라는 활동명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이름을 고집했고, 이름마저 전설이 되는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데뷔 초창기

 

그가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그의 의붓 형이 오디션을 보고 광고에 출연하는 걸 보고 자극을 받아서 였다. 그래서 오디션을 다닌 결과 그는 첫 광고를 찍게 되는데 바로 우유 광고였다. 

 

 

 

 

이후 디카프리오는 몇몇 교육용 광고 등에 출연했지만, 산만한 성격으로 현장 분위기를 흐리는 탓에 별로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는 스탭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카메라를 때리는 등 어린 악동이었다.

 

저예산 공포 영화<크리터스3>에 출연하다

 

레오의 첫 영화 데뷔는 저예산 호러 무비 <크리터스3>였다. 영화의 내용은 복슬복슬한 털북숭이 괴물이 지구를 점령하는 것이었는데, 흥행에 실패했다. 후에 이 영화는 디카프리오가 <타이타닉>으로 대박을 치자, 마케팅을 위해 DVD표지에 '디카프리오 출연'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크리터스3
레오의 어린 시절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출연을 통한 경험은 이후 레오가 시트콤 <Growing Pains>(1985)의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준 주연급 역할을 맡았고 출연 분량도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영화 오디션을 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연기 경험을 쌓고 인정받다

 

레오는 이후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1993)영화에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하면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 레오는 정신지체장애인 '어니'를 연기했는데, 사람들은 진짜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한 줄 알았을만큼 그의 배역 소화력은 대단했다. 덕분에 19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얻는다.

 

이후 <The Quick and the Dead>(1995), <바스켓볼 다이어리(The Baskeball Diaries)>(1995)에서 훌륭하게 청소년 배역을 소화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여기서 '리버 피닉스'와의 인연이 있는데 이는 아래 글에서 소개하겠다.

 

리버 피닉스와의 인연

 

원래 <바스켓볼 다이어리>는 리버 피닉스에게 갈 영화였다. 리버 피닉스는 <조커>, <그녀(Her)>영화로 유명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첫째 형인데, 23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레오와 리버
레오와 리버 피닉스

 

당시 리버 피닉스의 할리우드에서의 이미지는 젊고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금발 남자 배우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또한 리버 피닉스가 당시 자신의 롤모델이었다고 밝혔다. 리버 피닉스는 <스탠 바이 미>에서 어리지만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줬고, <아이다호>에서 매트릭스의 그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출연해서 열연을 펼친 바 있다.

 

레오는 리버 피닉스와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바로 리버 피닉스가 사고로 죽던 날이었는데, 레오는 클럽에서 그를 보고 다가가려고 했으나, 너무 많은 인파 때문에 그를 놓치고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다. 그리고 그 다음날 뉴스에서 리버의 사고 소식을 듣고 무척 슬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버 피닉스의 부재로 그가 출연 예정이었던 작품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돌아갔고, 그 이후 레오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레오의 리즈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꽃미남 책받침' 스타였다. 요즘에야 책받침을 안 쓰고 다 아이패드같은 전자 기기 학습을 하지만,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고 학교에서 많이 썼던 학용품이었다. 당시 꽃미남 책받침 남자 배우로는 전설적인 3인방이 있었는데, 바로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디카프리오 리즈 시절
&lt;토탈 이클립스&gt;에서의 디카프리오

 

이런 레오의 전성기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토탈 이클립스>, <로미오와 줄리엣>(1996), 그리고 <타이타닉>(1997)이다. 

특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은 그 당시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며(제일 흥행한 영화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타이타닉>을 제작할 당시, 제작사 측에서는 주인공 역할로 '매튜 맥커너히'를 추천했지만 감독이었던 제임스 카메론은 끝까지 레오를 쓰겠다고 고집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님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타이타닉>의 재밌는 일화

 

영화를 찍을 당시 침몰하는 배의 이야기니만큼 물에서 촬영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 때마다 레오는 물에 들어가기 싫다고 차갑다고 징징거려서 감독을 힘들게 했는데, 촬영이 끝날 때 쯤 돼서야 레오가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안 감독은 매우 화가 났다고 한다.

 

레오와 케이트
타이타닉 촬영 당시

 

함께 출연했던 케이트 윈슬렛과는 이 만남을 계기로 세상에서 제일 친한 '소울 메이트'사이가 되었다. 케이트와 레오는 힘들 때마다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예를 들어서 케이트 윈슬렛이 이혼 후 재혼 결혼식을 할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식장에 들어가기를 거부해서 레오가 대신 손을 잡고 입장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또한 <타이타닉>의 대성공 이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감독은 영화의 수익을 타이타닉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Millvina Dean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 일부 쓰겠다고 약속했다. 왜냐하면 Millvina는 노후의 의료 비용 때문에 자신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이후 레오는 그야말로 꽃미남 하이틴 스타였다.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기 때문에 이제 그의 향후 행보는 크게 기대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정상에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대를 뒤엎고 레오는 연기력으로 밀고 나가는 배우가 되어 할리우드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To be continued..

 

https://dailyhappiness.tistory.com/36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얼마나 부자인가? - <타이타닉>, <돈룩업>, <인셉션>의 그 배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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