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영화 제목은 <틱, 틱... 붐!>이다.
영어로는 좀 더 재밌다. <tick, tick... BOOM!>으로 앞에 tick, tick은 굉장히 시계 초침 같은 작은 소리로 표현하지만 마지막 '붐'에 굉장한 강세가 들어갔다.
<틱틱붐> 솔직 후기
어느 영화 전문 사이트에서 <틱틱붐>을 2021 최고의 영화로 꼽아 놓은 글을 보았다. 넷플릭스도 자꾸 이 영화를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무슨 영화인데? 하고 설명을 보니, 세계적인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영화라는 것이다. 세상에! <렌트>의 엄청난 팬으로서 안 볼 이유가 없었다.
다만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했다. 이렇게 대단한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가.
스파이더맨이 노래도 해?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는 것은 알았지만, 뮤지컬 영화라는 것은 모르고 보았다. 그래서 갑자기 주인공 조나단 라슨 역할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가 노래를 할 때 조금 당황했다.
감독이 린-마누엘 미란다인데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 하는 것일까? 린-마누엘 미란다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예약하기도 힘든 뮤지컬 <해밀턴>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작사, 작곡, 각본에 주인공 해밀턴 역을 맡아 엄청난 대성공을 이룬 작품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한 이야기인데, R&B와 랩을 활용한 새로운 뮤지컬이다.
노래하는 앤드류 가필드라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노래, 연출, 연기가 모두 완벽했기 때문에 점차 빠져들어 볼 수 있었다.
뮤지컬 배우 같은 발성은 아니었지만, 연기와 곡을 소화할 정도로는 매우 잘했기 때문에 더욱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붐!'은 <렌트>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너무 반갑고 슬펐다. 왜냐하면 영화 전반에 걸쳐 <렌트>의 소재가 되는 이야기, 인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내가 알아차렸던 떡밥들을 정리해보았다.
다음 작품은 너가 잘 아는 이야기로 해
조나단 라슨은 8년을 걸쳐 공들여 만든 <슈퍼비아>라는 뮤지컬을 에이전트와 제작자들 앞에서 선보인다. 이 워크숍에는 뮤지컬 계의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도 자리를 찾았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고, 손드하임도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정작 이 뮤지컬을 제작하겠다는 제작자는 없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기에는 '미래의 디지털 풍자와 로봇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는 너무 상품성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브로드웨이보다 조금 마이너하고 제작비가 저렴한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기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절망하는 조나단에게 그의 에이전트 로자는 '다음 작품은 네가 잘 아는 이야기로 해'라면서 그를 애써 위로했다. 조나단은 그가 영감을 받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메모장들을 보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해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슈퍼비아>이후 만든 <틱, 틱... 붐!>이다.
<틱, 틱... 붐!>은 이 영화 그 자체이자 조나단 라슨의 실제 뮤지컬이다. 그가 <슈퍼비아>를 쓰기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했던 거절의 순간들을 피아노와 밴드의 조화로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 이후 <렌트>를 제작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렌트>의 프리뷰 하루 전 날인 1996년 1월 25일 이른 아침, 집에서 대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결국 그는 그가 만든 엄청난 뮤지컬의 공연을 보지 못한 채로 눈을 감았다.
그래서 뮤지컬 <렌트>의 첫 곡은 항상 'Seasons of Love'이다. 이는 작곡가 조나단 라슨을 기리는 노래로 모든 캐스트들이 나와서 노래한 후,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 <렌트>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들이 출연한 영화 <렌트>(2005)의 오프닝 장면이다.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52만 5,600분의 시간들)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moments oh dear
(52만 5,600분의 소중한 순간들)
Five hundred twenty 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52만 5,600분의 시간들)
How do you measure, measure a year?
(당신은 1년을 어떻게 계산하나요?)
In daylights? In sunsets?
(오후의 햇볕으로? 노을로?)
In midnights? In cups of coffee?
(한밤중으로? 한 잔의 커피로?)
In inches? In miles?
(인치로? 마일로?)
In laughter? In strife?
(웃음으로? 울음으로?)
<틱틱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렌트>의 흔적 6가지
'말해~'하는 자동응답기 소리
영화에서 조나단은 그의 친구 마이클과 함께 소호의 한 낡은 아파트 6층에서 살았었다. 마이클의 배우 생활을 접고 광고회사에 취직해서 억대 연봉을 받기 전까지.
<렌트>에서도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크와 록 뮤지션 마크가 이러한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화 자동응답기 소리는 'SPEAK~(말해~)'하는 장난스러운 긴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다.
이러한 자동응답기 소리가 조나단과 마이클의 집에도 똑같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마크와 로져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얼마나 반가웠는지!
잘 나가는 광고회사 절친
영화에서 조나단과 마이클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마이클과 로저는 뮤지컬이나 노래에 항상 열정이 있었다. 그래서 YMCA에서 공연할 때 하루 종일을 연습해 준비하고, 같이 꿈을 위해 뉴욕으로 오기도 한다.
뉴욕에 온 후 조나단은 뮤지컬 작곡을, 마이클은 뮤지컬 배우를 준비한다. 그러나 마이클은 이제 끝이 보이지 않는 무명배우의 생활에 질렸다며 돌연 광고회사에 취직해 억대 연봉을 받는 커리어 맨으로 변신한다.
<렌트>에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베니'다. 정식 극 중 이름은 벤자민 '베니' 코핀 3세(Benjamin 'Benny' Coffin III)로, 원래 마크, 로저, 그리고 다른 주인공들인 모린, 콜린스와 함께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룸메이트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베니는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가더니 부동산 건물주가 되는 자본의 맛을 보고 만다. 그 후, 함께 했던 예술의 길 대신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며 그의 옛날 친구들에게 월세를 내라고 독촉하는 악당이 된다.
멋진 정작을 입고 도어맨이 있는 고급 아파트먼트에 사는 마이클을 보면서, '베니'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의 친구들과 에이즈
1990년대 미국은 지금과 같은 다양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호모포비아를 조장했고,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나 에이즈는 정말 말도 못할 취급을 받았다.
<렌트>에서 로저, 미미, 앤젤 등 많은 인물들이 에이즈를 겪고, 모린은 같은 동성인 여자 친구를 좋아한다. 이렇게 렌트에서 드러나는 다양성과 에이즈는 조나단이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의 사랑을 지지하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을 대신한다.
<틱틱붐>에서는 조나단의 옛 룸메이트 마이클과, 함께 일하는 문댄스 식당의 프레디가 에이즈 환자로 나온다. 당시 의학으로 에이즈는 약을 먹고 근근이 버티다가 병마에 집어삼켜지는 불치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는 시한부라고 여겨졌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그의 친구들을 도와주고 붙잡고 싶었던 조나단의 슬픈 마음이 <렌트>에서도 전해진다.
열쇠 던져!
<틱틱붐>에서 조나단 라슨이 살았던 소호의 낡은 아파트는 인터콤(1층 현관에서 벨을 누르면 해당 집에서 현관문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없을 만큼 별로인 집이다.
더구나 그는 5층(fifth floor)에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문을 열어주러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했다. 이러한 수고스러움이 싫었던 조나단은 열쇠를 창밖으로 던져서 친구가 직접 문을 열고 올라오도록 한다.
이러한 진짜 조나단의 삶의 모습이 <렌트>에도 반영되어 있다. 마크와 로저가 사는 아파트도 조나단의 실제 집과 비슷해서, 놀러온 친구 톰 콜린스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집에 전화를 한 후 '열쇠 던져!'라고 말한다.
<틱틱붐>에서 수전이 연락을 씹는 조나단과 얘기하기 위해 먼저 전화를 걸고 집을 찾아가는데, 이 때 수전이 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 부스는 실제 조나단 라슨이 살던 아파트 거리의 전화 부스이다.
떠나가는 댄서 여자친구
조나단의 여자 친구 '수전(Susan)'은 댄서이다. 실제로 조나단 라슨의 여자 친구는 댄서였고 그와 헤어졌다 사귀었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렌트>에서 이는 생업으로 춤을 추는 여자 캐릭터 '미미'로 표현된다. 미미는 밤마다 클럽에서 춤을 추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뮤지션 로저와 사랑하다가 싸워서 헤어진 후, 돈 많은 '베니'에게로 간다.
<틱틱붐>에서 수전은 돈도 없고 힘들게 사는 조나단을 보면서 함께 힘들어한다. 그리고 발목 부상 이후 춤에 대한 열정을 잃고 마는데, 이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버크셔의 댄스 강사에 지원한다.
또한 수전은 결국 조나단과 함께 인생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안락한 직업을 선택하여 그를 떠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를 응원하면서 '다음 작품에 써'라며 고급 악보집을 그에게 선물한다.
화음의 재정의
뮤지컬 <렌트>는 뮤지컬에 대한 형식과 노래 스타일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혁신적인 작품이다. 특히 화음에 대한 재정의가 그러하다.
뮤지컬 넘버 'Seasons of love'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La vie Boheme(보헤미안의 삶)', 그리고 'I'll cover you'에서 캐스트들의 어우러지는 화음의 절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렌트의 노래 스타일이 <틱틱붐>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제작자들이 모두 모인 워크숍에서 선보이는 곡(내일 너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올거야)과 문댄스 식당에서 일요일 브런치를 서빙하다가 화난 조나단과 그 캐스트가 부르는 'Sunday'에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Louder than words, 행동하자
<틱틱붐>에서 조나단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Louder thant words(말보다 큰 것)로,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행동은 말보다 울림이 크다'라는 주제의 넘버이다.
조나단 라슨이 이 노래 가사에서 얘기하는 것들은 모두 <렌트>의 주제가 되었다. 'No day, but today.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뿐'이라며 지금 당장 돈, 시간, 바쁜 현대사회의 일정 때문에 놓치고 있던 소중한 사람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왜 우리는 그냥 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우리의 이런 작은 행동이 어떻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지를 설명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아직 설날 전이니 2021년으로 묶어서 이야기하면, 올해는 꽤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난 해였다.
가장 최근의 <틱틱붐> 뿐만 아니라 <돈 룩 업>,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듄> 등 치밀하게 잘 기획되고 만들어진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또 더 좋은 영화에 대한 후기로 찾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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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ailyhappiness.tistory.com/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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